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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왜 하필 거기에 있을까..신냉전시대, 지정학의 힘 덧글 0 | 조회 145 | 2020-11-28 11: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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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eday@pressian.com)]2018년 10월 4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중국을 겨냥해 장문의 연설을 이어갔다. 인권 유린, 기술 탈취, 남중국해 문제, 위구르족 탄압 등 그간 국제 사회에서 파편적으로 거론되어 온 중국과 관련한 온갖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부통령은 미국이 더는 이 같은 문제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정학의 힘> 저자에 따르면 이는 21세기 들어 행해진 가장 중요한 역사적 연설이다. 신냉전 시대가 열렸음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1945년 여름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새로운 20세기 질서가 마련됐다. 미국과 소련을 양 축으로 하는 냉전 시대다. 이 시대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소련이 해체되는 1990년 전후까지 장기간 이어졌다. 전 세계가 두 축에 따라 줄을 나눠 섰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극동에서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휘말린 한반도는 둘로 찢어져 냉전의 새로운 대치선이 됐다.

냉전 시대가 물러나고 일극 체제가 도래했다. 미국이 지구상 유일의 슈퍼파워가 되어 세계 질서를 재편했다. 냉전 시기까지만 해도 기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두 기둥으로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몇 없었다. 이제 모두가 미국의 질서를 따르는 시대가 도래하리라 여겨졌다. 이 시기 미국을 위협할 절대적 외부 강자가 나오지 않은 대신, 테러리즘이 힘의 공백을 차지했다. 대 테러 시대는 21세기 초반까지 기승을 부렸다.

펜스 부통령의 연설은 다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뜻한다. 중국이 소련과 테러리즘을 대신해 미국의 새로운 적이 됐다. 중국의 강력한 자본력은 어느새 유럽에까지 가 닿았다. 이탈리아를 필두로 독일과 프랑스 등도 중국과의 전략적 제휴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중국의 자본력은 이미 남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를 집어삼켰다. 장기간에 걸친 투자로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독보적인 직접투자국이 됐다.

중국이 부상하는 사이 트럼프의 미국은 실정을 거듭했다. 미국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다. 가장 중요한 우방인 유럽을 내팽개치고(미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고, 관세 인상 카드를 들이밀었다), 극동 방어의 핵심 전략기지인 한국을 주둔군 철수 카드를 내밀어 협박했다. 트럼프의 미국은 세계의 경찰 노릇을 더는 하지 못하겠다는 선언과 더불어 유라시아 무대에서 물러나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으로 되돌아가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새로운 질서는 거대한 혼란의 소용돌이를 낳는다. 이 소용돌이가 잦아든 후에야 질서는 정연함을 찾는다. 한반도는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땅이다.

<지정학의 힘>이 20세기 주요 세계사적 사건을 정리한 후, 현재 각국의 지정학적 고려 사항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서술된 책인 까닭은,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역사적 전환점의 한가운데에서,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자리했음을 독자에게 새삼 상기시키고자 함이다.

책은 매킨더, 하우스호퍼, 스파이크먼, 키신저, 브레진스키 등 20세기 역사의 변곡점에서 중요한 이름을 남긴 이들을 중심으로 시파워(Sea power), 랜드 파워(Land power), 레벤스라움(Lebensraum), 림랜드(Rim land) 등 중요한 지정학 개념을 독자에게 설명한다. 히틀러의 나치가 지정학에 경도돼 전 세계를 흔드는 역사적 사태를 일으켰다는 이야기, 러시아 제국의 시베리아 철도 부설이 지정학적 소용돌이를 일으켰다는 이야기, 패망 직전 일제가 지정학적 고려를 통해 소련의 극동 진출을 기다렸고, 이 같은 고려가 한반도 분단에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는 설명은 깊이 고찰할 만하다.

이 같은 설명 이후 저자는 현재 세계 최대의 랜드파워인 러시아, 세계 최강의 시파워인 미국, 미국의 아성에 강력하게 도전하는 림랜드의 지배자 중국, 아시아 시파워의 강력한 축인 일본의 현재 지정학적 고찰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한반도가 처한 지금의 도전이 얼마나 중대하고 강렬한 지를 독자에게 설명한다.

지정학은 19세기 황혼기의 대영제국이 러시아 제국과 대결하던 시기 정립됐다. 당시 정립돼 지금까지도 지정학의 기본 바탕 개념이 되는 이론은 유라시아 대륙은 아프리카 대륙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세계섬(World island, 책 본문은 세계도로 지칭)이며, 이곳의 핵심 지점인 심장지대(Heart land)인 러시아-중앙아시아-동부유럽 일대를 지배하는 자가 나올 경우 세계 제국이 만들어진다는 주장이다. 세계섬 개념에서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은 그저 주변부의 거대한 섬일 뿐이다. 유라시아를 한 손에 거머쥐는 지배자가 나온다면 미국은 대서양으로부터, 태평양으로부터 양 쪽에서 협공을 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미국 입장에선 결코 유라시아 양끝, 즉 서부유럽과 극동아시아에 박아둔 미군을 철수해서는 안 된다. 이들 지역이 유라시아에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핵심이며, 협공에 처할 위기에 놓인 미국을 방어할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이후 실제로는 심장지대의 주변부인 림랜드야말로 바다로도, 육지로도 진출 가능하며, 전 세계 인구 대부분이 머무르는 핵심 지대라는 설명이 나왔다. 중국이 이 림랜드를 거머쥐려 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정확히 지정학자들이 언급한 정복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 같이 급변하는 시대는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제 모두들 익숙한 바와 같이 중국, 미국, 일본 어느 나라도 한반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은 한반도 통일이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을 줄이면서 결국 미국의 동아시아 이해력 약화로 이어지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중국은 휴전선 이남에 머무르는 미군이 한반도 통일 이후 압록강 부근으로 북상하는 상황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패권 다툼을 벌이는 일본은 남한이라는 중국발 힘의 방파제가 통일한국이 되어 되려 본토를 겨냥하는 비수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한반도가 시파워와 랜드파워의 힘이 충돌하는 최전선이기 때문에 맞이하는 운명이다. 이처럼 각 슈퍼파워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땅에서 한반도 분단-통일 문제는 결코 풀기 쉬운 '민족의 염원' 따위가 될 수 없다.

저자는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대신, 우리가 처한 현실을 더 큰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기실 한국전쟁이 멈춘지 7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우리의 시각은 20세기 냉전 시대에 머물러 있기 마련이다. 한반도 문제는 단순히 '이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북한과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슈퍼파워의 이해가 얽힌 지구적 문제인데도 말이다.

지정학은 자칫 곡해할 경우 위험한 길로 경도되기 쉬워 보이기도 한다. 세계를 단순한 힘의 무한 대결의 장으로 그리고, 다른 모든 고려사항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실제 복잡한 외교 무대나 군대의 전술지휘실에서 고려해야 할 지정학이 일반 대중에게 잘못된 방식으로 유행할 경우 히틀러로 향하는 길마저 열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 한반도는 이 같은 시각의 담론을 중요하게 필요로 한다. 더 넓은 시각으로 우리의 운명을 바라봐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저자 김동기는 비록 관련 분야를 전공하지는 않았으나, 풍부한 독서와 국제문제에 관한 폭넓은 이해력으로 독자를 설득하는 책을 써냈다.

[이대희 기자(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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