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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에서 버스 타랬더니.. 배낭 메고 동해까지 걸어간 아이들 덧글 0 | 조회 49 | 2020-11-29 12:13:58
냥이  

기사의 사진은 필름을 이용하여 촬영하고 직접 스캔하였으며 사이즈 조정 등 기본적인 보정만 했음을 밝힙니다. 괄호 안에 간단한 기종과 필름 종류를 기재하였습니다. <기자말>

[안사을 기자]

*<해변 쓰레기 주우러 나선 아이들이 거룩해 보인 이 장면>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고등학생과 교사 40여 명이 함께 커다란 배낭을 메고 8박 9일을 여행하고 있었다. '백패킹 노작기행'이라는 제목 아래 '짓기', '누리기', '생각하기'라는 세 개의 활동 모토를 가지고 낯선 곳에서 적응하고 생활하는 기행이었다. '짓기'의 활동으로는 '집짓기', '밥짓기', '꿈짓기'가 있었고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 세 가지를 계속해서 짓고 누리고 생각했다.

맑은 물 마읍천이 흐르는 해파랑길 31코스

본 기사는 통합기행 관련 4번째 내용이자 근덕면 매원2리에서 맹방리로의 도보 이동과 맹방리에서 동해역까지 시내버스 이동 미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월 29일 장호항에서 시작된 노작기행은 10월 31일 원평해수욕장을 거쳐 11월 2일 해파랑길 31코스를 걸어 맹방리로 향하면서 5일째 날을 맞이했다.

▲ 중식 장소 (645N/Ektar100) 야영장에서 짐을 꾸려 중식 장소까지 배낭을 메고 걸어왔다. 걷기에 환상적인 날씨였다.

ⓒ 안사을

이 날의 도보 이동은 풍경과 공기를 누리며 자연과 함께하는 활동이었기에 1km만 배낭을 메도록 했다. 고행에 지치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어깨를 가볍게 하고 때로는 해찰도, 때로는 잡담도 하면서 아이들이 서로와 함께 한가롭게 노닐기를 바랐다.

걸었던 코스는 '해파랑길 31코스'였다. 30코스는 차도가 대부분이라 레일바이크로 이동했는데 일반 관광객들도 그렇게 하기를 추천한다. 대신 31코스는 마읍천을 끼고 작은 마을들을 통과하면서 고즈넉한 풍경을 볼 수 있으니 꼭 걸어보기를 바란다.

▲ 비상차량 (645N/Ektar100) 함께 고생한 녀석. 백패킹이었지만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차에 가득 실린 타프와 난로, 쉘터와 응급의약품 등 때문.

ⓒ 안사을

나는 기행 내내 비상차량을 운전해야 했다. 기행을 마치고 확인한 트립컴퓨터에는 1000km가 조금 넘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짐을 가득 싣고 팀보다 먼저 움직여야 하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걷고 싶은 마음에, 목적지에 차를 두고 다시 돌아오는 방식으로 무리와 여정을 같이 했다.

이날도 그렇게 했는데 근덕면 하나로마트에 차를 세워두고 택시와 위치추적 앱을 이용하여 중간 지점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택시에서 내리자 다리 건너편 먼 곳에서 아이들이 보였다. 딱 한 시간 헤어져 있었을 뿐인데 머나먼 타지에서 다시 보는 아이들이 눈물겹도록 반가웠다.

▲ 다시 만난 아이들 (MZ-S/C200) "어! 쌤이다!"를 멀리서부터 외쳐주었던 아이들

ⓒ 안사을

▲ 해파랑길을 걸으며 (MZ-S/Ektar100) 부남1리 마을을 관통하는 31코스

ⓒ 안사을

▲ 가을 햇살과 함께 (MZ-S/Ektar100)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억새가 나부끼고 있었다.

ⓒ 안사을

4박5일을 텐트에서 취침하고 마음껏 씻지도 못한 아이들이었다. 이날은 11킬로를 걸어가기만 하면 편안한 리조트에서 따뜻한 물로 실컷 씻고 푹신한 이불 속에서 잠들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긴 거리임에도, "오늘 밤은 편안하게 잘 수 있으니까 걸어보자!"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아이들은 걷는 것 자체와 소박한 가을 풍경을 즐기기 시작했다. 샛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포즈를 잡기도 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걷기도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뭉클한 감동이 몰려왔다.

▲ 점프를 한 것도 아니고 안 한것도 아니여 (MZ-S/Ektar100) "하나 둘 셋!"을 외치자 자연스럽게 각자 포즈를 취했다.

ⓒ 안사을

▲ 부르자 돌아보는 (MZ-S/Ektar100) 이번 통합기행 때 누구보다 내면이 꿈틀거리며 스스로 고군분투했던 녀석. 이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서 마음을 담아 뒷면에 손편지를 써 주었다.

ⓒ 안사을

가을의 정점이었다. 황금빛 들녘은 없었지만 새로 심은 밀 싹이 파릇파릇 올라오고 있었고 은행잎과 억새꽃이 밝게 빛났다. 무엇보다 마읍천변에 한 줄로 선 느티나무가 새빨갛게 타오르는 모습이 눈이 부시도록 화려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청명한 공기 속에서 강렬하게 쏘아진 햇빛이 나뭇잎을 통과하면서 채도와 광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그랜드캐니언이나 나이아가라폭포처럼 광대한 풍경은 아니었지만 소박하면서도 결코 연하지 않은 선들이 고요한 시골마을을 온통 휘감고 있었다. 나란히 걷게 되는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이쪽 저쪽을 바라보라고 권유했다. 감탄의 소리는 교사들의 입에서 더 크게 터졌지만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도 분명히 아름다운 과정이 일어나고 있었을 것이다.

▲ 마읍천의 가을 (MZ-S/Ektar100) 응봉산에서 곧바로 흘러내려오는 맑은 물. 산란철이 되면 연어가 거슬러 올라간다고.

ⓒ 안사을

9km를 걸어서 근덕면 하나로마트에 도착한 우리는 밥 짓기 활동을 위해 저녁 식재료를 샀다. 이미 야영장에서 삼층밥(1층은 숯, 2층은 쌀밥, 3층은 생쌀)을 벽돌처럼 단단하게 만들어버리는 등의 시행착오도 겪었고 열악한 조리도구로 충분히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 연명해온 아이들이었기에 장보는 활동은 더 이상 막막한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정해진 금액 안에서 능숙하게 각종 재료들을 사면서 어떤 요리가 어떤 맛으로 만들어질지에 대해 이미 아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우리반 어떤 모둠은 닭튀김을 만들어 교사 방으로 가져다 주었는데 그 맛이 지금까지 먹었던 어떤 치킨보다도 맛있었다.

마트에서 2km를 더 걸어 리조트로 향했다. 들과 강을 지나 다시 바다를 만났다. 맹방해수욕장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과 바다를 오른편으로 하여 기분 좋게 걸었다. 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실내 취침을 하게 된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좋았을까.

▲ 맹방해수욕장 (MZ-S/Ektar100)

ⓒ 안사을

▲ 해변을 걸어서 (MZ-S/Ektar100) 리조트가 불과 300미터 앞에 있다고 하자 아이들은 좀 더 빨리 걸었다.

ⓒ 안사을

편안한 잠자리였기에 교사들 또한 모처럼 깊은 휴식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다. 각 방 안에서 혹시나 아이들이 비행을 저지르지는 않을지,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떠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했다. 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진행했던 교육 시간에서도 아이들은 새벽까지 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우리는 돌아가며 불침번을 설 것을 각오했다. 그런데 12시 반 정도에 아이들 숙소의 발코니를 확인하고 나서 살며시 웃고야 말았다. 그동안의 여독이 쌓일 대로 쌓였는지 모든 방이 깜깜했고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시내버스 이동 미션, 두 학생은 배낭을 메고 일부러 걸었다

다음 날의 이동 미션은 일종의 적응 활동이었다. 모둠별로 배낭을 진 채로 도시와 도시를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다양한 상황과 마주하며 약속 시간 내에 목적지에 도착해야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배낭을 메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에 볼멘 소리를 하는 학생들도 있었으나 '이동 미션'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신선했는지 이내 '재밌을 것 같다'는 식의 말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오전에는 맹방리에서 삼척중앙시장으로 이동하여 중식을 함께 먹고 먼저 먹은 순서대로 다시 출발하여 오후 3시 반까지 동해역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시내버스를 타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이겠냐마는 80리터짜리 배낭을 메고 기사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다니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터였다.

▲ 처음 온 버스 (휴대폰) 맨 처음 안내를 위해 나갔던 교사는 이 버스를 타기 위해 한 시간 20분을 기다렸다.

ⓒ 안사을

버스를 탄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배차 간격이 가장 짧은 노선이 90분짜리였다. 아이들은 최대한 서둘러서 짐을 챙겨 나갔고 어떤 이는 30분 만에, 어떤 이는 한 시간 만에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도시와 다르게 휴대전화 앱에 버스의 실시간 위치가 표시되어있지 않아 막막했는데, 나중에 시청에 전화를 해 보니 꽤 정확한 시각을 알 수 있었다. 이 또한 경험이었다고나 할까.

한 무리는 승차 거부를 당했다고 했다. 가뜩이나 특수교육대상자 학생들이 함께 있는 모둠이었는데, 다행히 교장선생님이 동행하고 있어서 잘 해결되었다. 버스 안에 다른 승객들이 많이 없었는데도 승차 거부를 한 기사에게 교장선생님은 신고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아이들이 무사히 중앙시장에 도착하여 중식을 먹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모험을 기획한 것이었지만 혹시라도 밥때를 못 맞추는 모둠이 나오지는 않을까 가슴을 졸였는데 참 다행이었다. 중식을 먼저 먹은 순서대로 아이들은 다시 한 모둠씩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 삼척의 배낭여행자들 (MZ-S/Ektar100) 이동중인 학생들

ⓒ 안사을

▲ 교사들 (MZ-S/Ektar100) 교사들 또한 아이들과 같은 무게의 배낭을 메고 모든 프로그램을 함께 했다.

ⓒ 안사을

아이들이 버스로 이동을 하는 동안 나는 비상 차량으로 근덕면 일대와 삼척시를 누비며 각종 서류들을 보강했다. 숙소마다 받아야 할 도장이 있었고 면사무소에서는 봉사활동 확인서를 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단체톡방에서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놀라운 내용의 소식을 보았다.

우리 반 두 녀석이 2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삼척에서 동해로 걸어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톡방에서 다른 아이들은 그 녀석들의 선택에 놀랍다는 반응을 했고 선생님들은 '애들이 점점 담임을 닮아가는구만'이라는 식의 표현을 하기도 했다. 주유소에서 차를 잠시 옮겨놓고 곧바로 전화를 했다.

"00야. 어디야. 지금.""쌤. 저 00이랑 같이 동해로 걸어가고 있어요.""야. 어쩌려고 그래. 길 안 위험해? 갈 만해?""네. 인도로 다 되어있고요. 한 8킬로밖에 안 되더라고요. 절반 넘게 왔어요.""이야. 대단하다. 지지한다. 이따가 동해역에서 만나면 진짜 반갑겠다. 쌤들이 니들 점점 나 닮아간단다. 하하하.""네. 쌤. 이런 거에 중독되어 가는 것 같아요. 이따 봬요."

깜짝 놀랐지만 경로를 살펴보니 위험한 도로는 아니었다. 무모한 도전에 찬사를 보냈다. 통화를 마치고 잠시 마음이 먹먹했다. 얼른 가서 늠름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두 녀석 중 한 명은 기행을 떠나기 전 무리한 운동으로 인해 허리 쪽 근육이 경직되었는데 이날 배낭을 메고 바른 자세로 오래 걸으니 허리 통증이 없어졌다고 했다.

▲ 삼척해변 (645N/Ektar100) 나 또한 아이들의 정신을 본받아 넓은 길을 두고 '새천년도로'를 통해 동해역으로 갔다. 중간에 커피원두를 사고 해변을 찍었다.

ⓒ 안사을

동해역에 도착하니 대합실이 꽉 차 있었다. 40명이 배낭 40개를 부여잡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배낭을 메고 두 도시를 연결하여 걸어 온 두 영웅을 만나서 거친 악수를 했다. 그중 한 명은 다름 아닌, 이전 기사에 등장했던 닭싸움 우승 학생이었다.

우리는 16시에 동해역을 출발해 17시 40분에 승부역으로 도착하는 기차를 기다렸다. 아이들을 기차에 태우고 배웅을 한 뒤 나는 차를 운전해 역시 승부역으로 향했다. 다음 목적지는 낙동강 최상류, 봉화군 소천면이었다. 우리는 승부에 딱 하나 있는 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승부-양원 비경길' 트래킹하는 마지막 걷기 코스를 앞두고 있었다.

▲ 기차를 타고 (MZ-S/Ektar100) 석양빛이 일찍부터 밀려오는 늦가을, 영동선에 아이들은 몸을 실었다.

ⓒ 안사을

*오지 마을 탐방, <양원-승부 비경길> 기행에 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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