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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빗장 연 원격의료.. "의료사고 책임 등 정책보완후 본격도입 서둘러야" 덧글 0 | 조회 20 | 2020-12-05 04:21:33
메디짐  

지난달 26일 자택에서 직접 혈압을 잰 이모 씨(93)는 수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수축기 혈압이 209mmHg까지 올라 정상범위(120mmHg)를 한참 벗어났기 때문이다. 평소 고혈압을 앓고 있던 이 씨는 혈압이 일시적으로 높아진 것으로 여겨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수치가 이 씨가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을 통해 보건소 담당 직원에게 자동으로 전달됐다. 전날 측정값(170mmHg)도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담당 간호사는 이 씨에게 전화를 걸어 곧바로 내원하도록 안내했다. 3일 동안 약 처방을 받은 뒤에야 이 씨의 혈압은 평소 수준으로 돌아갔다.

이 씨가 이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보건복지부가 지난달부터 시작한 ‘비대면 건강관리 서비스’ 덕분이다. 기존의 65세 이상 노인 대상 방문 건강관리 서비스를 비대면으로 전환한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자택 방문에 제약이 생긴 점을 고려했다. 혈압 혈당 활동량 체중 등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전국 24개 보건소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이 씨가 거주하는 경기 평택시 평택보건소에서도 현재 100명이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 코로나가 불 지핀 ‘비대면 의료’

코로나19 사태 이후 의료 현장의 바뀐 풍경 중 하나는 이 같은 ‘비대면 의료’의 활성화다. 비대면 의료는 원격수술 및 모니터링 등을 포함한 ‘원격의료’와 인공지능(AI) 등 질병 예방을 위한 소프트웨어 제품을 뜻하는 ‘디지털 치료제’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현행 의료법상 국내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대상으로 원격으로 진단이나 처방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의료진 간 협진만 가능하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원격의료의 빗장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올 2월 전화 상담과 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병원 내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복지부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전화 상담은 총 103만9571건, 진료비 청구액은 약 130억 원에 이른다.

올 2월 대구경북 지역 무증상·경증 코로나19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개설된 생활치료센터에서도 원격의료가 도입됐다. 환자의 체온, 혈압 등 생체 신호가 주요 병원으로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 접촉을 최소화하면서도 의료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서울대병원도 경북 생활치료센터에 모니터를 설치해 원격 화상진료를 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강원도의 원격의료 시범사업 참여 병원은 지난해 1곳에서 올해 8곳으로 늘었다.

김광준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의료기기의 발달로 병원에서만 할 수 있었던 검사가 자택에서도 가능해졌다”며 “고령 환자와 만성질환자 증가로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 원격의료 규제 완화 추세

원격의료를 먼저 도입한 해외에서도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의료 서비스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 일본은 올 4월부터 온라인과 전화를 통한 복약 지도가 가능해졌다. 기존에는 첫 진료 때는 의사와 꼭 만나야 했지만, 현재는 초진부터 원격의료가 가능하다. 미국은 의료인이 부족한 지역에서만 원격의료 보험(메디케어)을 적용하던 것을 모든 지역으로 확대했다. 급여 대상 항목도 80여 개를 추가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원격의료 도입까지 갈 길이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2000년 첫 시범사업 시작 후에도 개원의 중심의 대한의사협회(의협)의 반발로 도입은 번번이 무산됐다. 오진 가능성이 우려되고, 상급 병원에 환자가 쏠려 동네 병의원이 고사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오히려 규제가 강화돼 서비스가 중단된 경우도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2011년부터 해외 원격 화상진료를 해 왔지만 2017년 서비스를 중단했다. 원격진료에 제약이 없던 해외 환자에 대해서도 규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도 원격의료 도입을 더 늦출 수 없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정세영 분당서울대병원 디지털헬스케어 연구사업부 교수는 “비디오 가게가 망하고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시대가 됐듯이, 원격의료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며 “다만 1차 의료기관을 위한 대책 마련과 의료 사고 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등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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