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형병원에만 베스트닥터가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동네에, 또는 나만 아는 실력이 대학병원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의원·병원이 적지 않습니다. 뛰어난 실력과 연구 능력을 갖춰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오는 이런 의사들을 찾아내 ‘우리 동네 베스트닥터’로 소개합니다.》
안과 분야의 최대 국제 학술대회인 세계안과학회(WOC)는 2년마다 열린다. 올 6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올해 학술대회에서는 세션 하나를 국내 로컬병원(개인병원) 의사가 담당했다. 바로 서울 용산구 센트럴서울안과의 최재완 원장(48)이다. 그는 녹내장 수술과 관련된 세션을 기획했고, 좌장을 맡았으며 발표자로도 나섰다. 2만 명 이상의 세계 안과 의사들이 이 세션에 등록했다. 녹내장 수술과 관련해 세계안과학회에서 1인 3역을 맡은 국내 의사는 대학병원을 포함해 최 원장이 처음이다.
○ 환자 80%가 타지역서 찾아와
최 원장은 2012년부터 올해까지 5회 연속으로 세계안과학회의 초청을 받아 강연했다. 이런 사례는 국내 한 대학병원 교수를 제외하면 최 원장이 유일하다. 게다가 2회에 걸쳐 우수 학술상을 타기도 했다. 그 덕분에 국제적으로 꽤 유명한 의사가 됐다.
사실 그는 전임의 시절 발표한 논문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녹내장은 시신경이 죽으면서 발생한다. 실명에 이를 수 있는 심각한 질병이다. 안압이 높아질 때 발병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정상 안압일 때도 녹내장이 발생한다. 혈류가 불안정한 게 정상 안압 녹내장의 한 원인이란 사실을 최 원장이 밝혀냈다.
로컬병원 의사는 환자 진료에 치중할 뿐 연구는 별로 하지 않는다는 ‘속설’은 최 원장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가 지금까지 국제 저널에 게재한 논문은 40편. 이 중 절반이 넘는 24편을 센트럴서울안과가 문을 연 2011년 이후에 썼다. ‘연구하는 동네 의사’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동네 병원은 그 지역 환자를 위주로 진료한다. 하지만 최 원장의 경우 환자의 80%가 용산 이외의 지역에서 온다.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포기했다며 오는 환자도 많다. 그렇다 보니 최 원장은 연간 150건 정도의 수술을 한다. 대학병원 의사도 연간 100건 이상 수술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그 덕분에 코로나19 사태의 여파 속에서도 환자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수술센터 확장 공사를 시작했을 정도로 병원 규모가 커지고 있다. 그 비결에 대해 최 원장은 “동네 안과 의사이지만 동네 의사처럼 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세계적인 안과 의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진료하고, 투자를 늘리며, 최적의 진료 시스템을 맞추려고 노력한 게 환자의 마음을 잡았다는 뜻이란다.
○ 레이저-최소 침습 등 환자따라 치료법 달라
녹내장 환자에게는 안압 관리가 곧 치료다. 보통은 약물을 눈에 넣어 안압을 낮추거나 관리한다. 그래도 안압이 올라가면 레이저 시술이나 또 다른 수술이 필요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최적의 치료법을 찾아낼 수 있는 의사의 ‘경험치’가 무척 중요하다.
이달 초 55세의 여성 A 씨가 최 원장을 찾았다. A 씨는 지방에서 망막 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스테로이드를 너무 많이 쓴 탓에 안압이 55mmHg까지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10∼21mmHg를 정상 범위로 본다.
A 씨는 최 원장에게 안압을 낮추는 수술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최 원장은 들어주지 않았다. A 씨의 눈을 검사해 보니 레이저 치료만으로도 안압을 낮출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 원장은 불필요한 수술을 하지 말자며 레이저 치료를 권했고 시술이 끝난 다음 날 A 씨의 안압은 16mmHg까지 떨어졌다.
30대 중반의 여성 직장인 B 씨는 6년 전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 B 씨는 이후 장기 해외 근무를 했고, 그 결과 약물 투입 외에 다른 치료를 하지 못했다. 결국에는 안압이 크게 올라가 아침에는 시야가 뿌옇게 변하는 증세까지 나타났다.
최 원장이 보니 B 씨는 약물로 조정이 되지 않는 녹내장이었다. B 씨에게는 최소 침습 스텐트 시술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수술 후 안압은 떨어졌고 눈이 뿌연 증세도 사라졌다. 요즘도 B 씨는 안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이 사례처럼 최 원장은 환자의 상태에 맞춰 치료법을 달리 한다. 약물만 쓸 수도 있고, 수술 부위가 클 수도 있다. 최소 침습 수술을 할 수도 있다. 최 원장은 “가령 고도 근시 환자의 안압을 무턱대고 많이 낮추면 출혈이 생길 수 있다. 새로운 기법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효과와 안전성 모두를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외국 제약사들이 녹내장 신약과 관련해 컨설팅을 많이 의뢰하는 의사이기도 하다. 새로운 수술 기기를 선보이는 다국적 기업에도 조언을 종종 한다.
○ 시력 콤플렉스 극복 후 녹내장에 관심
녹내장에서 명의 소리를 듣지만 사실 최 원장은 병역 면제 판정을 받을 만큼 심한 고도 근시였다. 시력이 ―11디옵터였다. 안경을 벗으면 바로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불편은 상당히 컸다.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했지만 즐길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콤플렉스도 컸다.
최 원장은 “어렸을 때 조립식 장난감이나 책 같은 것에 지나치게 몰두한 탓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최 원장에 따르면 7∼12세의 어린 나이는 시력 감수성이 가장 높아 지나치게 근거리 작업을 많이 해서는 안 된다.
최 원장은 시력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안과를 택했단다. 전공의 시절 시력 교정 수술을 받았다. 수술 성공률이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교수의 말을 듣고도 강행했다. 다행히 각막이 두꺼운 편이라 수술 결과는 좋았다. 시력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된 것.
안과학을 공부하면서 고도 근시 환자들은 시력을 회복하더라도 녹내장이나 망막 박리와 같은 안과 질환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가 녹내장을 세부 전공으로 택한 이유다. 주변에서는 최 원장을 두고 ‘녹내장을 전공으로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말한다.
최 원장은 녹내장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데도 신경을 쓴다. 이를 위해 ‘녹내장TV’라는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질병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에서부터 수술 기법이나 해외 강연 자료 등 안과 의사가 알아두면 좋은 영상까지 70여 개의 동영상이 올라 있다.
최 원장은 녹내장을 악화시키는 습관도 지적했다. 대표적인 것이 흡연이다. 최 원장에 따르면 니코틴은 심박수와 혈압, 안압을 올려 시신경을 압박한다. 그 결과 시신경의 혈류가 줄어들어 녹내장이 악화한다. 최 원장은 미국 하버드대 연구 결과를 인용해 “하루 3잔 이상 커피를 마시면 녹내장 발병률이 1.66배 오른다”고 말했다. 농도가 진한 커피도 덜 마셔야 하며 카페인이 많이 든 에너지 드링크도 삼가야 한다.
올바른 운동법에 대해서도 조언한다. 가장 추천하는 종목은 걷기나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이다. 유산소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면 모세혈관이 발달해 말초 혈류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다만 과도한 근력 운동은 줄여야 한다. 최 원장은 “20회 이상 반복할 수 있을 정도의 강도로, 가볍게 근력 운동을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심한 근력 운동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또 머리가 심장 아래쪽에 위치하는 자세도 좋지 않다. 이를테면 거꾸로 매달리기 같은 게 대표적인데, 이 자세에서 안압이 극심하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