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관객에게 사랑 받는 대작부터 소수의 관객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숨은 명작까지 영화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텐아시아가 '영화탐구'를 통해 영화평론가의 날카롭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우리 삶을 관통하는 다채로운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박태식 평론가가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입니다.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는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평화롭게 시작했던 반전 시위가 경찰 및 주 방위군과 대치하는 폭력 시위로 변하면서 7명의 시위 주동자 '시카고 7'이 기소됐던 악명 높은 재판을 다룬 작품입니다. 재판 과정을 통해 시간이 흘렀으나 여전한 부조리와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대의 상황을 반추하게 만듭니다.
1968년 8월 민주당 전당대회가 시카고에서 열렸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L.B. 존슨의 지지도가 형편없이 떨어지자 부통령이었던 H. 험프리를 대선후보로 뽑은 대회였다. 이 전당대회가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된 이유는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같은 날 시카고에서 열렸고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폭력사태로 한바탕 소란을 겪은 후 남은 문제는 시위대와 진압경찰, 둘 중 어느 쪽이 사태를 유발시켰는지 가리는 일로 귀착됐다. 이로 인해 검찰에서 고발한 시위주동자들이 1969년 9월에 일리노이 법정에 섰는데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감독 아론 소킨)은 바로 일곱 피고(the Chicago 7)의 재판을 극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당시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1968년 반전 투쟁을 하기 위해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과 청년국제당(Youth International Party), 베트남전 종식을 위한 국가 동원 위원회(Mobilization to End the War in Vietnam) 등 여러 단체가 전국에서 시카고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연합시위를 벌였고 그 중 주동자급 8명이 재판정에 피고로 앉는다. 하지만 흑인 해방을 주장하는 흑표범당(Black Panther Party) 대표인 바비 실(야히아 압둘 마틴 2세)은 단지 4시간만 시위에 참여해 20분 연설만 하고 돌아갔을 뿐이다. 말하자면 딱히 재판정에 세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바비 실은 8명에서 빠지게 돼 결국 7명이 재판을 받는다. 그리고 시위 주동자로 고발된 데이빗(존 캐롤 린치), 톰 헤이든(에디 레디메인), 레니(알렉 샤프), 에비(사챠 바론 코헨), 제리(제레미 스트롱) 등도 폭력 선동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다. 영화 초반에 이들 모두가 평화 시위를 다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재판은 주동자들이 폭력사태를 선제적으로 일으켰다는 점을 증명하는 방향으로 진행됐고 이는 새로 구성된 닉슨 대통령 정부의 의도를 십분 반영하는 것이었다. 바로 베트남 전쟁의 확대였다. 그래서 무고한 자들을 유죄로 몰아가려 법무부 장관 존 N. 미첼(존 도먼)은 슐츠 검사(조셉 고든 레빗)를 선임했고 닉슨 정부에 우호적인 줄리어스 판사(프랭크 랑겔라)의 법정에서 재판이 열렸다. 재판에서 이들은 5년형을 받았지만 항소 법원에서는 원심을 파기했다. 이 정도면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라는 영화의 목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닉슨 정부의 불의와 부정을 고발함과 동시에 오늘날 미국에서 벌어지는 사태의 시금석으로 삼자는 뜻이다. 인종차별을 반대 시위에 불순 세력이 끼어들었다고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을 기억하기 바란다.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는 법정영화다. 하지만 법정영화란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증인 심문에 지난한 사실 심리가 이어지고 무한정 시간을 잡아먹는 배심원들의 판정과 재판 결과로 나온 판결문마저 내용이 너무 어려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는지 판단이 잘 안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법정영화다. 긴 재판 과정을 압축하고 관객이 꼭 알아야 할 내용과 재판에서 어느 대목이 가장 재미있었는지 보여준다. 아론 소킨이 TV 시리즈 '웨스트 윙'과 '뉴스룸' 등의 정치드라마에서 이미 상당한 실력을 쌓은 감독이라서 그런지 지루한 줄 모르고 영화를 봤다. 법정영화라면 이 정도는 만들어야 한다!
변호사 없는 재판을 거부하는 바비 실의 고집, 갖은 유머를 동원해 줄리어스 판사를 비웃는 에비, 참다못해 결국 주먹을 쓰고 마는 평화주의자 데이빗, 언제 증인으로 부를지 몹시 기다렸다는 전직 법무부 장관 렘지 클라크(마이클 키튼), 어떻게 해서든 재판을 재판답게 만들려는 변호사 컨슬러(마크 라일런스), 감동적인 최후 소명을 한 톰, 그 순간 기립하는 슐츠 검사까지, 출연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떤 강조점을 두어야 하는지 감독이 잘 알고 있다. 특히 법정모독죄를 남발하고 피고인의 이름마저 헷갈렸던 줄리어스 판사의 묘사가 뛰어났다. 후에 시카고 변호사들의 78%가 그를 부적격 판사로 지명했다고 한다.
컨슬러 변호사는 재판엔 오직 민사재판과 형사재판, 두 종류만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에비는 이것을 결론부터 정해놓고 하는 '정치재판'이라 불렀고 결국 에비의 말이 맞아떨어졌다. 미국은 사법권이 완전히 독립돼있어 어떤 외압도 가할 수 없다고 하는데 닉슨 정부가 감히 이를 넘보려 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사법 정의는 승리했고 그 후로 미국에서 사법권 독립이 보다 분명해질 수 있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우리나라 사법 현실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다시금 생각나게 해주는 영화였다. 영화에서 그 점을 확인하시기 바란다.
쟁쟁한 배우들의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 할리우드에서 잘나가는 연기자들이 총출동한 느낌이다. 이렇게 한 데 모으는 일이 아주 힘들었을 텐데 덕분에 역사적인 인물과 배우들을 맞춰보는 재미가 있었다. 감독의 식견에 감탄할 정도였다. 딱 두 장면만 나오고 사라진 마이클 키튼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불과 4시간 동안 열어놓은 넷플릭스 시사회에서 영화를 봤는데 그 과정 자체도 스릴이 넘쳐났다. 언제 접속이 끊어질지 몰라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영화를 봐서 그랬던 모양이다.
이 영화는 (비록 필자가 싫어하는 용어지만) '완성도'가 상당히 뛰어난 작품이다. 당시 영상기록들을 곳곳에 병렬시켜 사실감을 더해 줬고 재판에 관련된 인물들의 후일담까지 알려줘 '시카고 7인의 재판'이 단지 1969년 열린 한 번의 재판이 아니라 그 후로 미국 사회에 오랫동안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 중 톰 헤이든은 캘리포니아 주의 7선 하원의원이었다.
"세계가 보고 있다(Whole World is watching)!"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는 훌륭한 법정영화다. 장담한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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