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중국 정부의 홍콩 국가보안법 도입으로 홍콩 정부의 자치권이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홍콩을 떠나 싱가포르에 자리를 잡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싱가포르 매체 채널뉴스아시아(CNA)가 29일 보도했다. 싱가포르의 부동산 가격이 홍콩보다 비교적 낮은 데다, 국제공항 접근성이 좋고 강력한 법치주의로 정부 리스크가 적어 ‘홍콩의 대체재'를 찾는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는 것.CNA에 따르면 외국인의 주거 매입 제한이 없는 싱가포르 센토사섬 기준 방 2개짜리 콘도의 매매가는 평균 약 190만 싱가포르달러(약 15억6900만원)로, 저렴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집값이 높기로 유명한 홍콩에서 방 3개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가격이면 싱가포르에서는 방 6개에 뒤뜰까지 있는 주택을 구할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국제 부동산업체 CBRE에 따르면 홍콩은 5년 연속 세계에서 평균 부동산 가격이 가장 높은 도시로, 작년 기준 125만4442달러(약 13억8500만원)을 기록한 반면 싱가포르는 91만5601달러(약 10억1100만원)였다. 최대 25%에 달하는 싱가포르의 인수세를 감수하더라도 더 저렴한 가격에 부동산 구매가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지난 6월 홍콩 국가보안법 도입은 싱가포르 법 체계의 안전성이 더욱 돋보이는 계기가 됐다. 싱가포르 최대 민간 부동산업체 프롭넥스(PropNex)의 이스마일 가푸어 대표는 "부동산 관련이라면 싱가포르는 (코로나19의) 세계적인 유행에도 입지를 굳히고 있다"며 정부의 효과적인 코로나19 대응 또한 이에 한 몫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정부 차원의 코로나19 록다운(이동 제한조치)과 엄격한 국경 봉쇄가 이어졌음에도 전반적인 고급 부동산 거래는 작년보다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싱가포르 도시재개발청(URA)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싱가포르 중심 비즈니스 지구(CBD)의 부동산 거래 횟수는 전년 동기 약 20% 증가한 2362건을 기록했고, 전체 부동산 거래 중 외국인 바이어를 상대로 한 경우는 260건에 달했다. 가푸어 대표는 외국인 거래량이 작년의 316건에 비하면 약간 감소했지만, "싱가포르의 현재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상당한 숫자"라며 "이 중 75%가 중국 본토 또는 홍콩으로부터 온 외국인 바이어였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리세션(recession·경기후퇴)에 접어들었다.글로벌 부동산컨설팅 업체 쿠쉬먼앤웨이크필드(Cushman & Wakefield)의 크리스틴 리 싱가포르 대표는 "(싱가포르의) 록다운 조치가 6월에 종료되면서 해외 바이어들의 거래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리 대표에 따르면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면서 해외 바이어들의 거래량이 200% 이상 증가했고, 7월(33%)과 8월(5%)에도 각각 전월 대비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리 대표는 "홍콩 사업자들이 싱가포르로 이사하면서 매출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홍콩인들의 유입이 호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프롭넥스의 가푸어 대표는 "홍콩 기반 바이어들이 사무실 건물에 앞서 (본인들이 이사할) 주택을 먼저 매입하고 있다"며 홍콩의 사업자들이 싱가포르에 가진 관심은 현재 부동산 거래량 수치에 드러난 것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금융사들 또한 아직 중국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홍콩으로부터 대규모 철수 작업에 착수하거나 해당 사실을 알리는 데 조심스러운 분위기라고 CNA는 전했다.가푸어는 향후 싱가포르가 아시아의 테크 수도로서의 입지를 굳힐 것이라고 장담했다. 현재 싱가포르는 홍콩 기업들 외에도 중국 본토의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트댄스 등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진출이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