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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웃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울증 부르는 '감옥'..닥치지 않은 일로 우울해 말아요" 덧글 0 | 조회 28 | 2021-01-06 12:23:17
아랑솔  

[경향신문] ㆍ새책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펴낸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등의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해주었던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60)가 박종석 전문의와 함께 쓴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포르체)란 책으로 돌아왔다. “전 성격이 원래 냉소적인 편인데, 어느 순간 희망과 긍정의 아이콘이 돼버렸다”며 쑥스럽게 웃던 그는 “그건 아마 제가 고통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앓고 있는 파킨슨병 “어느 순간 희망의 아이콘 돼… 내가 고통의 중심에 있기 때문”

20년 넘게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그는 목소리를 크게 내는 일조차 쉽지 않다. 매번 1시간30분마다 경직된 근육을 이완시키는 약을 먹어야 한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이야기하다가 가끔 눈물을 비치기도 했지만, 이내 “눈가가 촉촉해져서 사진이 더 잘 나올 것 같지 않아요?”라며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았다. 지난 7일 서울 역삼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삶을 증거로 우울해하는 현대인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 다들 나처럼 우울해도 버티며 사는 거겠거니 참다 보니,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지 아닌지조차 모를 때가 많아요.

“저는 인터넷에 떠도는 우울증 체크리스트 같은 건 절대 하지 말라고 해요. 읽다 보면 이것도 내 문제 같고 저것도 내 문제 같고, 그럼 모두 다 환자가 돼버리거든요. 자기 상태는 자기가 가장 잘 알아요. 제가 책 쓰는 사람으로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때가 바로 그 헤매는 사람들을 병원으로 이끌었을 때예요. ‘어, 이것도 병원에 가봐야 하는 증상인 거구나’라고 환기시켜줬다는 거. 병원 가는 걸 두려워 마세요. 다섯 명 중 한 명은 우울증인 시대인데요. 옆집, 윗집에 사는 누군가도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일 수 있어요.”

- 왜 이렇게 우울한 사람들이 많아진 걸까요.

“힘든 시련을 겪은 사람에게 ‘얼마나 힘드세요’라고 공감의 말을 건네면, 아니래요. 그까짓 거 얼마든지 그냥 탁탁 털어버릴 수 있대요. 진짜 참을 수 없는 건 그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밤에 혼자 울고 그러는 자기 자신이라는 거예요. 항상 강해야 하고, 항상 웃어야 한다는 감옥 속에 자기 자신을 가두는 거죠. 인생을 살다 보면 우울할 수밖에 없는 때가 많은데, 제대로 우울해하지 못하는 것이 더 병을 만듭니다.”

저자는 책에서 영국의 저명한 과학자 루이스 월퍼트가 “아내가 암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보다 내 우울증이 더 고통스러웠다고 인정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진실이었다”고 고백한 내용을 소개한다. 그만큼 우울의 고통은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짐작도 하기 힘든 극한 상황으로 우리를 밀어넣는다.

저자는 누구보다 ‘고통’이 친숙한 사람이다. 사람은 ‘고통’ 앞에서 자신이 결국 혼자라는 사실을 매번 자각하게 된다. ‘고통’이 고통스러운 것은 무엇보다 그런 이유에서다.

“지난해 6번이나 입원을 했어요. 몸이 뻣뻣해지면 밤새 잠을 못 자요. 1㎝도 움직일 수가 없거든요. 손목이 뒤틀리고 열이 올라오는데, 진통제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누가 옆에 있든 없든 도움이 안돼요. 고통은 오롯이 혼자 겪어낼 수밖에 없거든요. 그때마다 ‘나는 결국 혼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신은 다행히 사람들에게 고통을 잊어버리는 법을 가르쳐주셨어요. 저에게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책을 쓰는 거예요. 책을 쓰는 순간만큼은 잊어버릴 수 있어요. 내가 아직 쓸모가 있는 사람이구나, 아직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파킨슨병이 무서운 것은 진행성 질병이란 점이다. 점점 악화돼 갈 것을 알고 있기에, 진단받는 순간부터 병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파킨슨 환자라는 사실을 늘 잊고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자신의 병을 부정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파킨슨 때문에 다리를 움직이는 게 어려워졌을 때도 저는 나 자신을 파킨슨 환자라기보다는 ‘다리를 끄는 사람’이라고 여겼어요. 내가 파킨슨 환자라는 사실을 자꾸 자각하다 보면, ‘나의 다음 단계는 이렇게 될 거야’라며 닥치지도 않은 미래를 현재로 끌고 와서 지금의 소중한 시간들을 망치게 되거든요. 그러기에는 내 현재가 너무 소중해요. 나는 아직 움직일 수 있고, 말할 수 있단 말이에요. 닥치지 않은 일로 우울해하지 마세요.”

최근엔 입안 근육도 굳기 시작 “강의하고 싶어, 못할 거 있나요”

팔다리 근육이 굳어 혼자 거동을 할 수 없는 저자는 최근 입안 근육이 조금씩 굳어가기 시작하면서 말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그는 “요즘 강의를 다시 나가볼까도 생각해보고 있다”며 웃었다. “못할 거 뭐 있어요. 말이 좀 아둔해지긴 했지만, 듣고 싶은 사람만 들으면 되지(웃음).”

저자는 아직 파킨슨 환자 대다수가 겪고 있는 우울증과 치매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그의 이런 긍정적인 마음과 삶에 대한 열정 덕분일 것이다.

“저에게 ‘~싶다’는 부사가 아니라 동사예요. 하고 싶으면 하면 되잖아요. 저는 요새 제일 하고 싶은 게 춤이에요. 지금은 몸이 제대로 안 움직이지만, 병세가 좀 좋아지면 막 춤을 추고 싶어요.”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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